🏀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 ‘화해’와 ‘부채감’의 서사로 본 또 다른 농구 이야기

🏀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 ‘화해’와 ‘부채감’의 서사로 본 또 다른 농구 이야기

“죽은 형과의 화해,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 – 슬램덩크는 이제 성장의 이야기다.”

감독: 이노우에 다케히코 | 개봉: 2023.01.04 | 장르: 스포츠 드라마, 애니메이션


1. 🎞 송태섭, 이제는 주인공이 된 ‘조력자’

만화에서 늘 조연으로만 그려졌던 송태섭은 이번 극장판에서 철저히 주인공의 위치에 선다. 이전까지 그는 경기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에 그쳤지만, 영화에서는 그의 시점과 정서가 모든 장면을 관통한다. 감독은 조용하고 말 없는 태섭의 내면을 스크린 가득히 펼쳐 놓았다. 무심한 듯한 표정 뒤에 감춰진 상실, 죄책감, 그리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결연함은 강백호와는 또 다른 방식의 성장이다.

형을 잃은 동생이 지닌 부채감은 단순한 슬픔을 넘는다. 그는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형의 길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이 복잡한 감정은 가족과의 단절, 형의 부재로 인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마음 깊숙이 남는다. 영화는 이를 무대 위에서 고요하게 풀어낸다. 격정적으로 표현되지 않아도, 말로 설명되지 않아도, 태섭의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한 장면은 그 모든 감정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2. ✉️ 편지 한 장이 말하는 것

영화의 초반, 송태섭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다 찢는 장면은 압축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연출이다. ‘형 말고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라는 문장은 그가 감당하고 있는 감정의 무게를 그대로 드러낸다. 가족을 잃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현실이 겹친다.

사실 이 장면은 슬램덩크의 원래 정서와는 약간 결을 달리한다. 만화 속 태섭은 자존심 강하고 직선적인 인물이었지만, 이번 극장판에서 그는 더욱 내면적이고 고독한 존재다. 이는 관객이 그에게 더 깊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농구는 그의 무대지만, 그 무대에서 진짜 싸우는 대상은 상대팀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다.

3. 💥 경기 그 이상의 드라마, 산왕전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산왕공고와의 경기는 단순한 승부를 넘는다. 이 경기는 태섭에게는 형과의 화해이며, 북산팀에게는 각자의 과거와의 결별이다. 팀원들은 모두 각기 다른 상처와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 강백호는 여전히 자존심 덩어리지만 성장했고, 정대만은 마지막을 준비하듯 진지하며, 서태웅은 묵묵한 리더로서 팀을 이끈다.

특히 경기 중반 이후 보여지는 태섭의 투지는 감동적이다. 자신보다 큰 상대를 뚫기 위해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다시 일어난다. 이 모습은 과거의 그가 아니라 지금의 그가, 성장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이 한 경기 안에 인물들의 정서와 드라마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4. 🧠 ‘포기하지 않는 마음’은 말보다 깊게 남는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너무 자주 쓰여서 식상할 법한 메시지가 이번 영화에서는 다시금 설득력을 갖는다. 감독은 이 문장을 단순한 명언이 아닌 캐릭터의 삶을 통해 증명한다. 감독님이 말하던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끝”이라는 대사는 진부할 수 있지만, 그 앞에서 뛰는 선수들의 표정과 자세는 진부함을 압도한다.

강백호가 부상에도 불구하고 감독에게 “지금이 제 영광의 순간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정서를 정리하는 클라이맥스다. 그는 예전처럼 단순한 덩치 좋은 무모한 녀석이 아니다. 그 역시 성장을 이뤘고, 이제는 누군가의 기대를 등에 짊어진 진짜 선수로서 존재한다. 모든 선수들이 각자의 성장을 경기 내에서 완성해낸다는 점에서, 이 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인상 깊다.

5. 📽️ 연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비주얼적으로는 아쉬움도 있다. 2D와 3D를 오가는 연출은 실험적이지만 감정선을 놓칠 위험도 동반한다. 몇몇 장면에서는 몰입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서사 흐름과 인물 중심의 감정 묘사는 그 단점을 보완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시절 슬램덩크’를 꺼내어 ‘지금의 우리’에게 다시 맞춰준 느낌이다. 그때는 단순히 멋지고 재밌었는데, 이제는 인생과 사람, 상실과 회복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영화는 여전히 농구를 다루지만, 그 농구는 더 이상 경기를 위한 경기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을 치유하는 상징이다.

6. ✅ 총평 – 성숙한 슬램덩크, 다시 돌아온 감정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단순한 팬서비스가 아닌, 과거의 추억을 현재의 이야기로 이어주는 통로다. 송태섭이라는 인물을 통해 감독은 상실과 회복, 부채감과 성장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짚어낸다. 이는 단지 스포츠 영화의 한계를 넘어, 정서적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로서도 평가받을 수 있다.

경기는 끝났지만, 감정은 계속된다. 슬램덩크는 그렇게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건다. “지금의 너는 괜찮은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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